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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밧줄'로 묶은 '트로트 퀸'


7살 베이비 가수 출신, '고속도로 메들리' 대박 히트 '징검다리'

김용임(53)은 여가수 트로트 대세를 이끄는 '퀸'으로 불린다. 그는 가요계를 관통하는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의 정통 트로트 계보를 잇고 있다. 장윤정 홍진영이 한 박자 빠른 변화를 시도해 바람을 일으켰다면 김용임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시대의 흐름과 젊은 트렌드를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때는 이름도 없는 메들리 가수로 오랜 무명세월을 견뎠다. 너무 힘들어 노래를 아예 포기한 적도 있다. 고생을 극복하니 낙이 찾아왔다. 고진감래란 말을 입증하듯 그는 이제 가요계가 인정하고, 자신만의 색깔과 위상을 우뚝 세운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가요계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데는 민요와 국악풍의 맑고 청량하면서도 맛깔나는 목소리도 한몫을 했다.


김용임의 인생곡은 '사랑의 밧줄'이다. 이 노래가 뜨기 전까지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이었지만 '사랑의 밧줄'이 중년의 필수 애창곡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았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 그사람이 떠날 수 없게~♪사랑의 밧줄로 꽁꽁 묶어라~♭ 내 사랑이 떠날 수 없게~♩'


필자는 '사랑의 밧줄'이 막 치고 올라오던 무렵인 2000년대 중반 전남 장성의 한 지역 축제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웬만한 행사 무대의 섭외 1순위로 당당히 '여왕 대접'을 받는다. '미스트롯'의 폭발적 인기로 전통가요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시기에 맞춰 위상이 달라진 김용임과 대면 인터뷰로 마주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김용임은 "'미스트롯'을 계기로 실력있는 신인들이 빠르게 어필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동률 기자

-요즘 트로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바뀌었다. 달라진 분위기를 실제로 느끼고 있나.


'미스트롯'의 대박 흥행이 몰고 오면서 짧은 몇 개월 사이에 대중적 호평이 부쩍 상승한 느낌이에요. 어려서부터 강산이 몇 번씩 바뀌는 세월을 노래해온 저로서는 가슴이 찡하죠. 누구보다 긴 무명 설움을 많이 겪었으니까요. 트로트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공통 장르이면서도 그동안 중장년 중심 시청층에 한정돼 늘 아쉬움이 많았어요. 젊은층이 외면한다는 이유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이 많이 축소됐고요. (미스트롯 흥행으로 생긴) 이런 분위기를 살려 실력있는 신인들이 빠르게 어필할 수 있는 통로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가정의 달' 5월은 공연계의 성수기이고, 가수들한테도 연중 가장 바쁜 달이다. 그 중에서도 김용임은 늘 '섭외 1순위'에 올라있는 가요계의 가장 '핫한 여가수'다. 그는 "누구라도 성과를 인정할 만큼 신선하게 다가온 '미스트롯'이 한동안 침체한 가요계 분위기를 살렸다"면서 "다만 한가지, 예능 오락에 치중해 재미를 살린 건 좋지만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누구보다 힘든 무명 설움을 겪었다. 가요계에서는 '사랑의 밧줄'이 히트하면서 가수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맞아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사랑의 밧줄'을 들고 처음 방송국을 갔는데 '아니, 무슨 가사가 이러냐, 느낌부터 너무 우왁스러운 거 아니냐'면서 노래를 접으라고 하더라고요. 서운함과 좌절을 느꼈지만 돌파구를 찾지는 못했어요. 너무 오래 무명생활을 해서 새 음반을 만들 돈도 없고 더 물러설 곳도 없었거든요. 결국 지방 무대부터 활동을 해야했는데, 운좋게도 서서히 반응이 올라오더군요. 노래가 바람을 타기 시작한 뒤 방송국엘 다시 갔더니 무시하던 분들이 이번엔 '가사가 예술'이라며 더 칭찬을 하더라고요.


'사랑의 밧줄'이 인기 상승의 물꼬를 튼 뒤 성공적으로 가요계에 연착륙했다. 물론 '사랑의 밧줄'에 앞서 부른 '열두줄'(2001년) '의사선생님'(2002) 등은 그의 음악적 색깔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이후 '내 사랑 그대여'(2007) '빙빙빙'(2009) '부초같은 인생'(2011) '사랑님'(2014) '내장산'(2015) '나이야 가라'(2016) 등 부르는 노래마다 좋은 반응을 냈다. 가요계에선 노래 한 곡 히트 후 후속을 잇지 못해 멈추는 경우가 흔하다. 무명시절 인사조차 제대로 받아주지 않던 몇몇 인기 가수들이 자신과 역전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마치 제가 특종의 주인공이 된 것같네요." 스페셜인터뷰를 위해 더팩트를 찾은 김용임은 "복도에 도열한 수많은 단독 특종 사진들이 압도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이름이 비슷한 국악인 김영임과 특별한 콘서트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트로트와 국악이 만나는 이색 시도가 이채롭다.


네, 국악계의 거목이신 김영임 선배님과 함께 무대를 하기로 했어요. 이름이 비슷해서 '자매가 아니냐'고들 해요. 자매는 아니어도 김영임 선배님이 유명한 경기민요 전수자이자 공연계의 블루칩이시잖아요. 사실은 저도 트로트로 데뷔하기 전 경기민요 공부를 했거든요. 크로스오버가 가능한 트로트와 국악의 만남이란 점에서보면 알게 모르게 서로 공통점은 있는거죠.


김용임은 국악계 거목인 '회심곡'의 김영임과 함께 오는 5월23일 '김영임 김용임의 희희낙락 콘서트'를 펼친다. 그에겐 가수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갖는 특별한 무대인 셈이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팬들이 먼저 조인트 무대를 요청했던 공연"이라면서 "한때 국악인을 꿈꾼 저로서는 더없이 영광스런 무대"라고 말했다.


-동료가수 진성 박현빈과 함께 '트로트 빅3' 릴레이 무대도 주목을 받고 있다. 어느새 트로트계를 대표하는 가수가 됐다.


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에 늘 감사해요. 매년 디너쇼와 단독콘서트를 하고 있지만 이번 '빅3'는 그 의미가 남달라요. 진성 선배님의 깊이있는 카리스마와 묵직한 목소리는 저와 전혀 색깔이 다른 것처럼 보여도 실제 무대 위에선 절묘한 조화를 이뤄요. 박현빈도 큰 교통사고를 겪은 뒤 잠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가수로 한층 더 유쾌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고요. 아시다시피 어르신들 사이에선 나이와 상관없이 '영원한 오빠'로 불리잖아요. 강함과 부드러움의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무대죠.


김용임은 지난달 31일 성남 공연을 시작으로 고양(4일), 11일(전주), 18일(의령)까지 진성 박현빈과 함께 '빅3 콘서트-행복한 동행'이란 타이틀로 무대를 꾸미고 있다. 한마디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랑을 받는 트로트 곡들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카랑카랑하고 구성진 창법이 매력인 진성은 2008년 낸 '안동역에서'가 뒤늦게 대중적인 애창곡이 되면서 빛을 봤다. 오랜 무명생활을 거친 뒤 정상급 가수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김용임과 비슷하다. 2006년 '빠라빠빠'로 데뷔한 박현빈은 '곤드레만드레' '샤방샤방' '오빠만 믿어' 등 흥 넘치는 노래로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김용임은 지난달 31일부터 진성 박현빈과 함께 '빅3 콘서트-행복한 동행'을 무대에 올린데 이어 오는 23일엔 국악인 김영임과 '김영임 김용임의 희희낙락 콘서트'를 하며 바쁜 5월을 보낸다. /이동률 기자, KBS '가요무대'

-7살 때 극장쇼 무대에서부터 노래를 했다는 얘기는 뭔가. 80년대에 데뷔한 걸로 알려져 있지 않았나?


제가 베이비가수 출신이었다는 건 오늘 처음 말씀 드려요. 정식 데뷔한 건 84년이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 손에 이끌려 극장쇼 무대에 섰거든요. 아버지가 노래를 너무 좋아하는 한량이셨는데 당신이 못다한 꿈을 저한테 쏟으셨죠. 민요와 국악, 성악과 가요를 두루 배우게 해주셨고,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도 가르치셨어요. 덕분에 지금도 작곡가분들과 작업을 하면 '음감이 유별나게 뛰어나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요.


당시 극장쇼 무대에선 '트로트 천재'로 불리던 베이비가수들의 인기가 꽤 높았다. 연기자로 치면 아역탤런트인 셈인데 성년 가수들 틈새에 감초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지만, 아예 꼬마가수(베이비)들로만 멤버를 구성해 지방 순회공연을 다닐 때도 있었다. 하춘화 옥두옥 오은주 허윤정 등이 모두 베이비가수 출신이다. 이들은 김용임이 베이비가수로 막 입문했을 때 이미 높은 인기를 누리는 선배들이었다고 한다.


-듣고 보니 어려서부터 충분히 준비가 돼 있었음에도 대중 가수로 인정받기까지 유독 오랜 세월을 보낸 것 같다.


아버지는 7남매 막내인 저를 유독 예뻐하셨어요. 무용과 악기 등 뭐든 하게 해주셨고, 모든 음악 장르를 섭렵할 수 있었죠. 하지만 결국엔 대중음악쪽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여고 졸업후 김영광 길옥윤 장욱조 선생님 같은 유명 작곡가 사무실을 찾아다녔는데 어린나이에 부딪쳐보니 막막하더라고요. 곡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지 홍보가 뭔줄 몰랐으니까요. 92년 결혼과 함께 가요계를 완전히 떠났어요. 그런데 노래를 못 하게 되니 삶의 의미가 없더라고요.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대신 이번엔 메들리 음반제작에 응하게 됐는데 마음을 비운 탓인지 대박이 났어요. 1년 사이에 무려 6집까지 냈으니까요.


그는 중고시절에도 '옥구슬 굴러간다'는 말을 들을 만큼 장구와 북 장단에 맞춰 소리를 잘했다. 덕분에 경기민요와 경서도 민요를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경기여고에 진학해서는 엉뚱하게도 성악공부까지 했다. 졸업후 장욱조의 '목련'(84년)을 내고 4년간 활동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안치행의 '빗물은 내맘 알거야'(89년)로 2년간 활동하다 역시 성과없이 포기했다. 결혼과 함께 가요계를 떠났다가 99년 '김용임의 트로트 대백과'를 내면서 컴백, '고속도로 메들리 가수'로 대성공을 거둔다.





"팬들을 감동시키려면 저부터 가슴에 꿈과 희망을 먼저 채워야죠." 김용임은 스케줄이 비면 어김없이 힐링 여행을 떠난다. 이집트 피라미드(사진 위) 와 덴마크 인어공주상(아래) 앞에서 한컷. /김용임 제공

-요즘 가요계 주변에서 '김용임만큼 노래 연습 많이 하는 가수가 드물다'는 말이 들린다. 정상급 가수로 인정받고도 쉼없이 연습을 해야하나.


노래 연습을 게을리 하면 우선 저 스스로 만족을 못 해 참지를 못 해요. 그런데 이보다도 사실은 팬들이 먼저 알아보죠. 저한테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들은 그만큼 민감해요. 신인 때나 밤낮 연습한다고 생각하시면 오해입니다. 싱글 골퍼도 하루만 연습을 쉬면 금방 타수가 늘어난다고 하잖아요. 가수들도 마찬가지예요. 프로가 될수록 남모르게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해요. 목 관리를 위해 먹고 마시는 것도 조심하고요. 저는 '인기가수'라는 타이틀보다 차라리 '연습벌레'란 말을 듣는게 더 좋아요.


김용임은 가수로는 드물게 서울 당산동에 개인 연습실을 갖고 있다. 유명 가요 작곡가 녹음실을 겸해 운영되는 연습실이다 보니 수시로 음악적 교감을 나누는데도 안성맞춤이다. 20년 전 메들리 음반 발매 당시 그는 히트가수들의 노래 연습으로 거의 매일이다시피 밤을 지샜다. 김용임은 "트로트 가수는 남의 노래를 많이 불러봐야 어느덧 제대로 된 음감을 터득하게 된다"면서 "제 노래라도 열번 스무번 부르는 것과 50번 100번 부르는게 그 느낌이 다 다르다"고 했다.


-대중 가수는 각종 행사에 얼마나 많이 초대받느냐에 따라 인기가 매겨지고, 행사 개런티에 따라 그레이드가 정해진다.


트로트 가수 지망생들 중에 저를 '롤 모델'로 꼽는다는 얘길 종종 들어요. 그래서 방송이나 지자체 행사에서 만나는 후배들을 보면 위상이 올라간 만큼 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더 두렵고 겁이 나요. 아직은 최정점을 찍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고요. 향후 5년간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어요. 아주 길고 힘든 여정을 거쳐 온만큼 대중 앞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가수로 남고 싶어요.


김용임은 첫 결혼에 실패한 뒤 노래를 '돌파구' 삼아 가요계로 되돌아왔다. 그는 "노래가 아니면 할 게 없었다"고 했다. 컴백 후 다시 수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히트곡을 냈다. '사랑의 밧줄'은 시성웅 YW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만나면서 인생곡이 됐다. 가요계에서 오랜 히트 노하우와 홍보 마케팅 경험을 가진 시 대표의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덕분이다. 김용임은 "처음엔 가수와 매니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노래가 히트하고 후속곡이 연달아 터지니 차츰 남자로 보이더라"고 웃엇다. 두 사람은 첫 만남 후 7년 만인 2009년 결혼식을 올렸다.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꿈은 이뤄진다.' 김용임은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고진감래를 체험하며 가요계가 인정하고, 자신만의 색깔과 위상을 우뚝 세운 주인공이 됐다. /이동률 기자

2002년 '열두줄'로 주목받은 김용임은 이듬해 '사랑의 밧줄'이 크게 히트하면서 비로소 존재감을 알렸다. 정식 가수로 데뷔한 지 18년 만이고, 7살 베이비가수 시절까지 되돌아가면 무려 35년 만이다. 최근에는 2016년 낸 '나이야 가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왕성한 활동 비결이 궁금했다. 건강관리를 묻자 그는 "음식은 특별히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 스타일이고, 그렇다고 별도로 다이어트같은 걸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평소 헬스와 골프로 기초체력을 만들고, 노래를 위해 차량 이동중에도 틈틈이 다리를 들어올리는 운동을 하며 배 근육과 단전을 강화한다고 했다.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꿈은 이뤄진다.' 김용임은 "지나 보니 어느 순간 운명은 바뀌더라"고 했다. 그는 무명가수에서 스타가수로 긴 여정을 대중 앞에 생생히 보여줬다. 잔잔함과 차분함, 절제있는 목소리로 팬들의 마음을 한데 묶었다. 이를 위해 종종 힐링 여행을 떠나 자신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먼저 채운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필자에게 비친 그는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천생 가수'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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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5/05 조회수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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