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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18년, 연예인처럼 살려고 한다"




강원래(48)는 지금으로부터 꼭 18년 전인 2000년 11월 9일 가수의 삶과 인생이 뒤바뀌는 충격적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날 오후 1시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던 중 불법 U턴하는 차에 치였다. 사고 직후 생과 사를 넘나들다 극적으로 깨어나 재활에 성공하지만 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꿍따리 샤바라'로 대표되는 클론 멤버 강원래에게 평생 휠체어 신세는 가혹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클론은 서태지나 HOT보다 앞서 동갑내기 친구 구준엽과 함께 국내 최고의 춤꾼으로 활동한 2인조 댄스그룹이었다.


강원래가 죽음보다 깊은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음악과 가족이다. 음반을 발표하고 휠체어에 앉은 채 방송에도 출연하는 불굴의 투지로 팬 곁에 돌아왔다. 여덟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2세를 얻는 기쁨을 맛봤고, 최근엔 아내 김송과 함께 아들 강선(5) 군의 가을운동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강원래는 최근 서울 이태원에 90년대 '춤꾼들의 성지'로 불린 문나이트를 재오픈했다. 반가운 마음에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우려와 달리 흔쾌히 받아들인다. 아버지와 남편, 원조 아티스트로 완벽하게 재기하기까지 무려 18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그간의 행보와 깊은 속내는 또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사고 이후 강원래는 마음을 닫고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필자 역시 클론이 중국에서 바람을 일으킨 90년대 후반 이후 종종 인터뷰한 바 있지만 그와 단둘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9일 그가 운영하는 이태원 문나이트클럽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원래는 시종 진지하면서도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강원래 스페셜인터뷰는 최근 새로 문을 연 이태원 문나이트클럽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배정한 기자


-충격적인 사고 이후 20년 가까이 흘렀다. 힘든 시기를 거치는 동안 클론을 사랑하는 팬들도 함께 힘들어했다. 지금은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그렇게 보이신다니 안심이네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니 편안해졌어요. 겪어보니 의학적 치료, 특히 정신과 치료가 더 중요하더라고요.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면 누구도 인정하지 않죠. 부정과 분노, 좌절의 단계를 거쳐 수용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설 수 있어요. 장애는 정상인들보다 단지 좀 불편할 뿐이지,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강원래 역시 교통사고 직후 스스로 분노를 삭히지 못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뭘봐, 내가 불쌍해 보여? 내가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냐?"며 부딪치고 반발했다. 심지어 병원 의사나 간호사들에게까지 욕설을 퍼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후 물리치료→작업치료→수치료(수중 근육운동)→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요즘도 여기저기서 '걷게 해주겠다'며 상처를 주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네, 이젠 그런 얘기에 신경 안 써요.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고 해요. 사고 후 4년쯤 됐을 무렵 선배가수 조덕배 씨와 우연히 같은 무대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그분은 세살때 소아마비 장애를 겪고 사시는 분이잖아요. 웃으면서 인사를 드렸더니 '아닌 척하면 더 힘들다'면서 '자신은 베개가 썪을 때까지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가수 활동을 하면서도 단 한번 울어본 일이 없었는데, 진심어린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니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라고요.


강원래는 사고 후 한동안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다. 그는 "남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행동이 나중에 지나고보니 누군가에게 관심을 끌려는 행동처럼 비쳐졌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이런 행동에 동정이나 위로보다는 수많은 악플이 괴롭혔다. 사고자체를 '쇼'라고까지 비난하기도 했다.



"저 역시 자살 예방치료를 받을 만큼 심각했죠." 강원래는 요즘도 연예계 불행한 사고를 접할 때마다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배정한 기자

-당시 사고는 연예계 대표적인 불행한 일로 기억되고 있다. 한때 연예계 '11월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사건을 부각시키려는 언론의 프레임일 뿐이고, 개인적으로는 상상도 하기 싫은 기억이에요. 연예계 큰 사고 소식을 접하면 과거엔 몰랐던 더 깊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더구나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경우에는 더 마음이 아프죠. 제가 그 심정을 너무 잘 알죠. 저도 자살예방 치료를 받으며 고비를 넘겼으니까요.


연예계에 해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징크스가 있다. 이른바 '11월의 저주'다. '11월의 저주'는 1987년 11월1일 25살의 젊은 나이에 가수 故 유재하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됐지만, 강원래의 교통사고로 재촉발됐다. 이후 가수 김현정 교통사고, 주병진 성폭행 혐의 구속, 가수 B양 비디오 사건, H.O.T 해체, 황수정 마약복용 검거, 고현정 이혼, 김부선 대마혐의, 신정환 불법도박혐의 등이 모두 2000년대 11월에 터졌다.


-SNS에서 오른 가족 사진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최근 문나이트를 다시 오픈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


긴 시간을 돌고돌아 이제서야 제 자리에 돌아온 느낌이죠. 문나이트는 춤꾼들의 고향같은 곳이고, 90년대 추억과 향수를 되돌려놓고 싶었어요. 누군가 해야할 일을 제가 대신 했을 뿐이에요. 벌써 많은 춤꾼들이 다녀갔고 다들 좋아합니다. 이제 60~70년대 '쎄시봉'은 없지만 90년대 '문나이트'는 되살아난 셈이죠.


이태원 문나이트는 90년대 댄스 음악의 산실이 된 곳이다. 가수 현진영을 비롯해 강원래 구준엽, 양현석 이주노, 이현도 김성재 등이 이곳을 거쳤다. 문나이트는 그 장소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지난달 25일 재오픈됐다. 상징성을 고려해 최대한 90년대 당시 그곳과 가까운 곳을 택했다. 오픈 이후 스파크, 노피플(이주노) 제갈민, 박남정, 홍영주, 길건, 가희, 채연, 구준엽, 홍록기, 박상민, 박미경, 인순이, 이상봉 등이 다녀갔다.



강원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교통사고였다면 지금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바로 아들의 존재"라고 말했다. 사진은 부부가 아들 선군의 가을운동회에서 찰칵. /강원래 인스타그램

-요즘도 사람들은 아내 김송 씨의 얘기를 많이 한다. 특히 아들 선이 태어난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고 들었다.


아들은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제 삶의 기준이 또 한번 바뀌었으니까요. 물론 그 한가운데에 아내 김송이 있고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시험관 시술이 번번이 실패할 때였어요. 몇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고집을 부렸고, 실패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게 힘들었죠. 그런 고통의 시간이 오늘의 저를 다시 있게 해준게 아닌가 싶어요.


강원래 김송 부부는 여덟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지난 2014년 아들 선을 얻었다. 강원래는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아내와 심한 갈등을 겪은 등 가장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당시 힘든 시기에 대해 김송은 "주위에서 입양하고 말지 뭘 그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했지만 난 남편을 닮은 아이를 낳는 게 꿈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최근 김송은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늘 하루도 신나게 출발"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외출준비를 마친 아들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불행한 사고로 수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사고 이후 힘들었던 강원래에게 아들은 어떤 의미인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보니 인생은 정말 희로애락의 연속인 것같아요. 정점을 달리다 어느 한순간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그 좌절의 늪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같아도 다시 행복을 느끼며 살잖아요.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교통사고였다면 지금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바로 아들입니다.




"이제는 주변 도움없이 혼자 외출할 때도 많다." 강원래는 "장애는 남들보다 조금 불편할 뿐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말했다. /배정한 기자

-사고 이후 아내가 늘 동행하는 걸로만 알았다. 오늘은 혼자인데 크게 불편해 보이지 않아 보인다.


저는 장애1급이잖아요. 사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움직이는 것도 쉽지는 않죠. 그래도 뭐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내는 지금 해외 여행 중이긴 한데, 평소에도 저 혼자 외출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장애우들을 위한 시스템이 비교적 잘 돼 있는 편이에요. 오늘 아침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결국 경비원을 부르는 불상사가 생겼어도 이젠 거뜬합니다.


강원래는 침대에서 떨어져 입은 상처를 보여줬다. 여기저기 비슷한 상처 흔적들이 그의 홀로서기 의지와 오버랩 됐다. 그는 스케줄에 따른 이동에 모두 아내에게만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장애지원법에 따라 월 100시간 활동보조인을 둘 수 있고 국내선의 경우 항공료도 동행 1인까지 50%의 지원을 받는다고 귀띔했다.


-요즘 TV에선 자주 안 보이던데 그래도 방송활동은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들었다.


네, 라디오 출연입니다. 10여년째 라디오 출연을 해오고 있는데 TV처럼 역동적이진 않지만 애청자들과 교감하다보면 소소한 행복을 느낍니다. 초기엔 제 처지가 실감이 안나 삶을 포기할까 생각했을 만큼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청취자들과의 소통이 저를 지탱하게 해준 가장 큰 힘이었던 것같아요. 특히 음악적 트렌드를 늘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 좋았고요.


강원래는 사고 후 3년 뒤 KBS 제2라디오 '강원래와 노현희의 뮤직토크'를 진행하면서 라디오와 첫 인연을 맺었다. 현재는 제3라디오 '강원래의 노래선물'을 진행중이다.


-휠체어에 앉아 춤을 추는 모습만으로 흥겨워보인다. 앉아서 춤을 춰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한때 '쿵따리 유랑단'을 이끌고 자원봉사 형식의 공연을 한 적이 있죠. 작지만 제 형편과 처지에 맞는 일을 해보니 보람은 그 이상이더라고요. 그리고 춤이란 느낌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표정과 제스처만으로 얼마든지 신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고, 즐기다보면 장애라는 사실 조차 잊는 경우도 많고요.



강원래는 8차례의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아내와도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 사진은 후배가수 김원준 결혼식에 참석할 당시 강원래 김송 부부. /문병희 기자

-최근 BTS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거세게 불고 있다. 이런 K-POP 열풍은 클론도 초기 한류에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그렇게 평가해주시니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같아 기분이 좋네요 ㅋ. 90년대 후반 유키라는 대만 가수가 클론의 '도시탈출'을 불러 현지에서 대히트를 냈어요. 그때 원곡 가수인 저와 구준엽을 초청해 공연을 했는데 또 대박이 난거죠. 국내에선 상상할 수 없을 엄청난 센세이션이었요. 대만에서 분 열풍은 곧 중국 본토와 홍콩으로 확산됐는데 이때 현지 언론이 처음으로 '한류'라는 단어를 썼다고 해요. 알고 보면 클론이 한류의 시발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죠.


클론은 당시 국내 방송에서 금지돼 있던 귀고리 착용 등 현란한 액세서리 패션을 선보이며 아시아 팬들을 사로잡았다. 청바지 옷을 찢는 등 야한 안무를 앞세운, 말 그대로 과격한 무대였다. 한류 이슈를 몰고다닌 이런 독특한 패션은 후에 국내 무대에서도 허용됐다.


-혹시 장애우들을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들이나 가까운 주변사람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게 있다면?


세상 모든 일은 본인 할 탓이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의미가 있다고 봐요. 실제로 경험해 보니 남 탓하고 의존하면 다시 부메랑이 되더라고요. 불행이든 아니든 제 일을 이웃이나 주변에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습니다. 다만 딱 한가지 장애를 경험하고 살면서 아쉬운 부분은 있어요. 어려서부터 성교육시키듯 제도적으로 장애교육도 병행했으면 합니다. 누구나 장애를 겪을 가능성을 안고 살잖아요.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분들은 열이면 열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강원래는 국립재활원 등에서 중증장애 수용자로서의 무료 강의를 해오고 있다. 강의 내용에 대해 그는 "장애는 나쁜게 아니므로 그 자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면 힘들어진다"면서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하고 살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로 대신했다.



강원래는 "치명적인 교통사고 후 18년이 지나서야 '더불어 웃고 사는 행복의 비결'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진은 2년전 DMC 패스티벌 '2016 축제의 서막' 당시 강원래 공연 장면. /임세준 기자

-가정에서는 한 여자의 남편이고 아이의 아빠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면 말해달라.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10년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많은 긍정적 일들을 했을 것같거든요. 이태원에 오픈한 '문나이트'는 늦었지만 새로운 기회를 위한 첫 발걸음이라고 생각해요. 돈벌이를 위한 행보는 절대 아니고요. 교통사고로 생과 사를 넘나들고 보니 돈이 삶을 위로하지는 못하는 것같더군요. 돈 보다는 사람끼리의 따뜻한 사랑을 만들며 살고 싶어요.

강원래는 사고 이후 한때 우울한 이미지로 비쳤다. 2시간여 스페셜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의 모습에서 어둡고 부정적인 모습은 '1'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불편함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하는 필자에게 되레 "장애를 겪지 않았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저만의 행복도 있다"고 웃었다.


요즘 누군가 알아보고 달려와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응하고 셀카 포즈까지 해준다. 필자에게 그는 "가급적 연예인처럼 살려고 노력한다"면서 "치명적인 교통사고 후 18년이 지나서야 '더불어 웃고 사는 행복의 비결'을 깨달았다"는 말도 있지 않았다. 강원래의 밝고 환한 미소 속에서 새삼 스페셜한 기쁨과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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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11/12 조회수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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