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연극 무사 종료-
다음 글 부터는
제가 직접 업로드를 하게 되겠군요.
핫핫핫.
어머니도 뵙고 싶고, 독자분들의 쪽지도 빨리 보고 싶습니다.
===================== 짜식아, 이제 간신히 4주 됐다. =====================
‘Nuclear lunch detected.'
허씨
- 너....넌 지난번에 그 영장류!!
머리 잘랐다고 내가 못 알아볼 것 같으냐!!
기억
- 뭐? 영장류? 이게 언제 봤다고 막말이야!
생긴 것도 바바리안 같은 게
주둥이로 힐윈드 돌고 자빠졌네....
즐이셈!! 꺼지셈!!
이후 난 세 번이나 가발을 바꿔 써가며
폭탄녀 역할을 해야 했다.
가장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건
스티커 사진 찍을 때 쓰는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단발머리 가발이었다.
민아 - 수고했어요. 이제 잠깐 쉬어요.
폭탄녀 역할을 모두 마치고 무대 밑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한동안 허씨와 김씨의 대화가 이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나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김씨
- 내라꼬 영장류 데리고 일루 오고 싶겠나~!!
내도... 촌에서 왔다꼬 무시 받고....
가스나들한테 외면 받고.. 그래 산단 말이다~!
양 손으로 허씨의 얼굴을 비벼 뭉개며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김씨.
한참을 그 서러운 기분에 몰입하던 중
김씨의 감정 리미트가 끊어지고 말았다.
김씨 - 으아아아~!!! 파트랏~~쓔!!!!
............
기어코 일을 내는 구나.
짧은 시간. 절대적인 침묵이 공간을 지배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계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김씨의 표정에
한 줄기 눈물이 반짝인 듯 했다.
김씨 - 파트랏....슈...
‘뭔 소리래?’ 라고 할만도 했지만
차마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무대를 감싸고 있었기에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 때, 김씨의 억센 손아귀에
복사기에 얼굴 넣고 복사한 듯한 표정으로 찌그러져있던 허씨가
천천히 그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허씨
- 고마... 내가 미안타.
글타꼬 지금 시골 생각하면 우야노.
걱정 말그라. 파트라슈도 잘 있을끼다.
설마 니 없다고 잡아 묵기야 했겠나.
허씨의 재치 있는 대응 덕분에
김씨의 절규는 고향 생각 정도로 마무리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골에 있는 개 이름인가봐.’ 라고 숙덕거렸다.
..... 다행이다.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잠시 후 허씨의 단독 장면이 이어지고
멍한 표정으로 무대에서 내려선 김씨는
‘후아...내가 왜 그랬지?’ 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누가 알겠는가? 며느리도 모를 걸.
이 장면이 끝나면 내 차례다.
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겠지?
나도 김씨 같은 실수를 하진 않을까?
점점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엔 정말 실수하면 안 되는데....
손이 저릿하고 뻑뻑해지는 느낌에
난 의자에 앉은 채 손목을 주물러댔다.
내가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걸까.
이런 적 거의 없었는데...
민아 - 자, 이제 나가요.
기억 - 예? 벌써요?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허씨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황급히 무대 위로 올라섰을 때
폭탄녀 역할의 여파로 엄청난 환성이 터졌다.
갑작스러운 환성에 움찔하는 사이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 대사가 뭐더라?
뭐부터 시작을 해야 하지?
분위기가 가라앉은 다음에도
난 멍하니 무대 위에 서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난잡한 생각들만
빙빙 맴돌고 있을 뿐
당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아무 말이건 해야 해.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해!!
기억 - ...... 세상에서 돈이 제일이야~!!!
그 순간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한동안 메아리가 귓가에 징징 울렸다.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 분위기.
분위기만큼이나 고요해진 머릿속에
잊었던 대사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기억
- 친구, 여자, 술, 담배 그런 거 다 필요 없어.
돈! 돈이 힘이고, 돈이 진리야!
돈 없으면 연애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그래, 지금은 나를 비웃지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독립을 성취하겠어!
왠지 조금 흥겨운 기분이 들었다.
Groove.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처럼
내 마음을 휩쓸고 다녔다.
기억
- 우선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본을 모으는 거야.
그 다음 주식에 투자해서 몸집을 불리고
성공하면 재건축 될 아파트에 투자해야지.
그 다음은 당연히 재테크!
아파트를 팔아서 땅을 사는 거야.
저기 어디 충청도 한 적한 곳에 왕~창.
혹시 누가 알아? 대한민국 수도가 그리 옮겨갈지?
이렇게 신이 나서 말해본 적이 있을까?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오는 대사들.
후끈 달아오른 관객들.
‘기가 차다 +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군.’ 이라는 표정의 교수님.
귓가에 들리는 빠른 템포의 음악만큼이나
세차게 두근거리고 있는 심장소리는
음악보다 더 경쾌했다.
이윽고 각종 아르바이트로 청춘을 불태우는 장면이 지나
여름방학 돌입 장면.
난 무대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딩~ 디링~ 디딩~ 딩....빠바밤!’
애절하게 흘러나오는 비창의 멜로디.
난 음악에 맞춰 경련하듯 몸을 뒤척이며
숨 넘어 갈 듯한 목소리로 대사를 해댔다.
기억
- 8시에 출근인데~. 그 전까지 할 짓이 없어~.
드어어~ 라인에이지도 이젠 지쳤어...
누가.... 누가 좀 놀아줘~!!!
외로워, 외로워, 외롭다고~!!!
하이힐에 꼬리 밟힌 지렁이처럼
몸을 비비틀어가며 절규를 해대는 동안
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움츠릴수록 부끄럽다.
숨으려 할수록 환한 곳에 있는 것 같고
피하려 할수록 시선은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기억 - 나도 이제~ 청!춘 사업에 투자할 거야~!!
연극은 순식간에 결말을 향해 질주하여
공대찌꺼기의 결성에 다다랐다.
김씨 - 이리하여, 세 남자는 같은 목표 아래 뭉쳤다.
김씨의 해설과 동시에 무대 위로 올라온 공대생 패밀리.
후레쉬맨 같은 데서나 볼 법한
화려한 포즈로 무게를 잡고 있던 세 사람은
이윽고 격렬하고 화려하게 절망하기 시작했다.
허씨 - 그런데 조에 여자가 없어~!!
김씨 - 이런 파트라슈~!!
기억 - 나 이거 드롭하면 두 과목 밖에 안 남아~!!
품속에서 폭탄녀 가발을 꺼내 쓰고
헤드배잉을 해대는 나의 뒤로
김씨와 허씨가 드롭킥을 해대며 날뛰었다.
김씨 - 우리 조의 이름은!
허씨 - 공대...
기억 - 찌꺼기.
‘파밤~!!’
특수효과용 안개처럼 폭발하는 환호성 속에서
우리는 동시에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아의 독무대.
종이 한 장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무대 위를 누비는 그녀.
이윽고 원하던 것을 찾은 듯,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민아
- 음..... 그러니까 강의실이 여기구나.
어라? 문에 뭐가 붙어있네?
아래 수업 강의실은 체육관으로 이동 되었습니다?
체육관이면..... 에엑? 여기서 15분은 걸리잖아?!
이런 게 어디 있어~!!
서둘러 뛰어나가듯 무대에서 사라졌던 그녀가
잠시 후 지친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섰다.
민아
- 헤엑...헤엑.... 아이고 힘들어.
이 거리를 매일 왔다 갔다 해야 한단 말이야?
그나저나 다음 강의실이 어디보자....
아, 이 건물 5층이네.
아앗~! 엘리베이터가 없잖아~!!
이렇다 할 동작도, 특이한 억양도 없었지만
그녀의 연기는 생동감이 넘쳤다.
무대 위의 그녀가 아니라
실제 그 순간의 그녀를 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연습 때도 종종 느꼈던 것이지만
그녀는 아름답다.
빨주노초파남보 같은 색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천연색의 파도 같은 아름다움.
한 순간,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빛깔을 바꿔가는 그녀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민아
- 아유 힘들어... 엄마야... 다리에 알 생긴 거 봐.
누가 보면 육상 선순 줄 알겠다.
다음 학기엔 꼭!! 전~부 가까운 데로 할 거야!
무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씨가
해설을 맡아 상황을 넘겼다.
김씨
- 백설 공주는 소원대로 수강 신청을 했지만
학기가 시작되는 첫 날....
시장에서 산 독이 든 사과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드르렁~!! 푸우~!! 드르렁~~!! 푸우~!!
무대 위에 누워서 김씨의 해설에 맞춰
과장되게 코를 고는 시늉을 하는 그녀.
얌전하고 귀엽게만 보이는 그녀가
이런 장면을 서슴없이 해낸 다는 게 나로선 놀랍기만 했다.
김씨 - 쿠아아아~!! 긁적긁적.... 뒹굴.... 피유우우....
하지만 해설에 재미를 느낀 김씨는
온갖 형용사를 넣어가며 그녀를 괴롭혔다.
눈을 감고 있지만 난색이 역력한 민아의 표정.
꿋꿋하게 엉덩이를 긁어가며
김씨의 지시를 따르는 그녀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김씨 - 결국 백설공주는 첫 수업부터 지각을 하고 맙니다.
민아 - 엄마야~!! 늦었다~!!
김씨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감았던 눈을 반짝 뜨며 무대에서 뛰어내려오는 그녀.
정말 부끄럽긴 부끄러웠나 보다.
김씨 - 그리고 다시 강의실.
처음 공대 찌꺼기 조가 결성 된 날처럼
무대 위에 나란히 선 세 사람은
궁극의 목표 달성을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기억 - 좋아, 아직 기회가 있어.
허씨 - 다섯 명인 조에서 여자를 한 명 빼내오는 거야!
김씨 - 아까 보니까 5조에 예쁜 애가 있던 데?
허씨 - 어디 어디?
여자가 한 명 뿐이었던 5조에서
‘야~ 너 예쁘데~!’ ‘너 빨리 저리로 가라.’
같은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이정도 반응은 이미 예견되었던 일.
김씨 - 아, 지금 보니까 아니다. 미안하다.
허씨 - 이게 확! 큰일 날 뻔 했잖아!!
5조를 중심으로 폭소가 터지는 사이
무대에서 내려갔던 민아는
강의실 앞문으로 나간 뒤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오고 있었다.
교수 - 저기 늦게 들어오신 분!
민아 - 네?!
교수님은 연극 시작 전에 부탁드린 데로
무대로 올라와 필요한 대사를 해주셨다.
교수 - 이 강좌에 친구 있나요?
민아 - 아...없는데요.
교수 - 여기 이 분들이랑 한 조 하세요.
민아 - 아..... 예.
공돌이 부대 - ~!!!!!
‘할~~렐 루야. 할~~렐 루야.’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우리의 옆에 와서 선 순간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이 감동적으로 울려 퍼졌다.
얼싸 안고 감격에 젖는 공대생 부대.
잠시간의 축제 분위기가 진정되자 교수님의 마지막 대사가 이어졌다.
교수 - 이로써, 공대 찌꺼기 조가 완성되었습니다.
민아 - 네~에?!
모든 것은 예전과 똑같았다.
단지 다른 점은
그날 보다 더 크고 즐거운 환호성이
정신이 멍할 정도로 들려왔다는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 길.
민아 - 아~ 정말 아슬아슬 했어요~!
허씨 - 다 이 놈 때문이야. 파트라슈는 무슨...
김씨 - 에휴..... 내가 눈에 뭐가 씌었었나봐.
민아
- 남 탓하지 말고, 글쩍글쩍 또 뭐예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요?!
김씨 - 아하하.... 죄송해요. 저도 눈에 뭐가 씌었었나 봐요.
잠시 강의실 앞에 멈춰 선 우리는
연극 때 있었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다.
민아 - 쿡쿡...... ‘그래도 역시 돈이 제일이야~!!’가 명대사였죠.
허씨 - 아!! 맞아!! 그게 제일 쇼킹했다.
순간 귀가 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김씨나 허씨는 몰라도...
그녀 입에서 그 대사가 나오다니.
이런 망신이 어디 있을까.
민아 - 여러분, 연극부 들어와요. 정~말 신날 것 같아요.
김씨 - 아핫핫. 전 됐어요. 나름대로 재밌긴 했지만.
허씨 - 저도 여기까지요.
그녀의 시선이 김씨와 허씨를 지나
나에게 머물렀다.
난 머쓱하게 한 쪽 손으로 뺨을 가리며 고개를 피했다.
말해볼까? 연극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그럼... 그녀와 더 친해질 수 있을까?
민아 - 아쉽네요. 진짜 신났었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버리는 그녀.
안 되는데, 안 되는데~!
기억 - 저 들어가겠습니다!
민아 - 네~ 먼저 들어가세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데....!!
하지만 난 어느새 눈물을 휘날리며
붉은 석양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런 파트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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