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채워주는 사랑 3막-
10월 17일 일요일.
에버랜드에서 공대생까페 정모가 아마 있을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공대생까페 적당한 게시판을 참고하시고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10초 내에 한강 굴다리 밑으로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런데 거기가 대체 어딥니까? =============
철수 - 이제 몸은 괜찮아요?
선희 - 예, 걱정 마세요.
배경은 겨울 길.
무대 조명 아래에 놓인 하얀 솜은
순백의 눈처럼 빛나 보였다.
휠체어를 밀고 있는 철수와
파리한 모습으로 분장을 고친 민아.
눈 아래 칠해진 아이섀도만큼이나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선희 - 철수씨, 잠깐만요.
철수 - 예? 무슨 일 있나요?
선희 - 저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철수 - 예에?
선희 - 천천히 앞으로, 조금 더 오른 쪽이요.
수박 깨기 놀이를 하듯
선희의 지시에 따라
무대 한 쪽에 쓰러져있는 회계를 들쳐 업은 철수.
다시 배경은 선희의 집.
선희 - 정신이 들어요?
회계 - 으으, 여긴?
선희 - 저희 집이에요. 괜찮으세요?
철수 - 선희씨, 커피 끓여 왔어요.
선희 - 우선 몸을 좀 녹이세요. 눈길에 쓰러져 계셨어요.
잠시 후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선희 - 어머나, 의사 선생님이세요?
회계
- 아 그렇다니까요.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뭐하지만
이 근방에선 이름 깨나 날리고 다닙니다.
선희 - 그런 분이 눈길엔 왜...
회계
- 왜긴 왭니까, 그놈의 술이 문제지....핫핫.
그나저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
음...어디보자.
아가씨 다리는 언제부터 그런 거요?
선희 - 아마 3년 정도 됐을 거예요.
회계 - 호오... 어디 진찰 한 번 해봅시다.
둘의 이야기는
이상할 만큼 아귀가 잘 맞아들어 갔다.
철수도 뭔가 낌새를 느낀 듯 주춤거렸지만
둘이 대화엔 끼어들 틈새도 없어 보였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회계 - 어때요, 오늘은 감각이 좀 느껴집니까?
선희
- 예, 기분이 참 묘하네요.
금방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회계
- 하핫, 그거 희소식이군요.
하지만 아직 무리는 하지 마세요.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선희의 집에 머물며
다리를 치료해주기로 한 의사.
휠체어에 앉아 보낸 시간이 무색할 만큼
그녀의 상태는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듯 했다.
철수 - .........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철수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철수는 그녀에게 뭔가 말을 꺼내려다
이내 손을 거두고
뒤돌아 밖을 향했다.
배경은 술집.
김양과 철수가 술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김양 - 선희씨 상태는 어때요?
철수
-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는 감각도 제법 돌아왔데요.
김양 - ..... 다행이네. 오늘도 혼자 일하는 거야?
철수
- 의사가 찬 바람 쐬면 회복에 안 좋다고...
되도록이면 나가지 말래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양이
철수의 뒤로 돌아가 그의 어깨를 감쌌다.
김양 - ...... 무서워요?
철수 - 뭐..뭐가요?
김양 - 그녀가.... 다시 걷게 되는게.
철수
- 무, 무슨 소리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김양 - ......정말?
철수 - .......
김양 - 철수씨는.... 지금이 행복해요?
철수 - 예.
김양
- 그녀가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서게 되면
그 행복이 깨질까.... 두렵지 않나요?
김양의 속삭임에 철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어두운 그림자를
들켜버린 부끄러움.
하지만 그 표정엔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분노 같은 것도 함께였다.
철수
- 그녀가 절 떠나는 건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그녀가 떠나지 않을까봐....
그녀가.... 자리에서 설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제 곁에 계속 머물러 있을까봐
그게 더 두려워요.
이제 곧 그녀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제가 발목을 잡는 게 아닐까 걱정돼요.
그리고.... 마지막에.....
제가 그녀를 못 놓아줄까봐 두려워요.
말을 마친 철수는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는 김양의 팔을 꼭 붙잡으며
소리죽여 흐느꼈다.
김양 - 바보같은 철수씨...
자신의 마음속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이기적인 욕심과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그는 무너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각.
선희의 집.
선희 - 콜록!!!! 콜록!!!! 우윽..... 윽..... 푸흡!
휠체어에 앉은 채
입을 막고 거친 기침을 해대던 그녀의 손 사이로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회계 - 선희야..... 너....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니?
선희 - .......
피로 얼룩진 얼굴을 손수건으로 힘들게 닦아내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계
- 왜 괜히 나쁜 여자가 되려는 거야?
그냥.... 그냥 솔직히 말하고...
마지막 길 편하게 가면 좋잖아!!
선희 - 그럼.... 철수씨가 너무 힘들잖아요.
회계
- 야..... 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나 이제 잘 걸어요. 그러니까 이제 당신한텐 볼일 없어요.’
그러고 떠나면 괜찮을 것 같아?
선희
- 그 쪽이....덜 아플 거예요.
철수씨도... 그러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
회계
- 네가 아직 남자를 모르는 구나....
네가 아직 남자가 궁지에 몰리면
얼마나 독해지는지 몰라서 그래!
선희
- .... 그냥... 아무 말하지 말고
이대로 계속 밀어붙여 줘요. 아저씨.
시간이..... 별로 없어요.
푸흡!! 쿨럭.... 쿨럭!!!
이야기는
감춰졌던 베일들을 하나 둘 벗어 내리며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떠나감을 준비하는 여자와
떠나보냄을 준비하는 남자.
둘의 닿을 수 없는 시선 사이에서
침묵은 둘을 묶어주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하지만... 침묵은 어느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배경은 눈이 쌓인 거리.
비틀거리는 철수를 김양이 부축했다.
김양
- 철수씨 오늘 너무 많이 마셨어.
선희씨한테는 내가 나중에 말해줄테니까
그냥 자고 가.
철수
- 아 글쎄 눈 감고도 갈 수 있다니까요!!
못 믿어요?
당연히 못 믿겠죠 원래 장님이니까....
원래 눈 병신이니까!
그래도... 그래도 갈 수 있다고요.
선희씨한테는....
안 보여도 갈 수 있다고요~!!!
철수의 가슴 시린 술주정을 들으며
김양은 눈물을 훔쳤다.
차라리 자신이 선희였다면....
자신이 다리가 불편했더라면...
철수 - .....마스터.
김양 - 으, 으응?
철수 - 부탁이 있어요.
김양 - 뭐....뭔데?
철수 - ..........
잠시 후.
선희의 집 앞.
회계가 담배 연기를 푹푹 뿜어가며
상념에 잠겨있다.
무대 한 쪽에서 손에 작은 가방 하나를 든 철수가
지팡이를 짚은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등장했다.
철수 - ....... 의사 선생님. 거기 계세요?
회계 - 으응? 아, 철수군.
철수 - ....선희씨 옆에 없죠?
회계 - 아, 지금 안에 있는데. 왜? 불러줄까?
철수 - 아뇨, 됐어요.
자신에게 뭔가 용무가 있는 듯한 그의 행동에
회계는 그를 자신의 옆에 앉혔다.
철수 - 많이 좋아졌어요?
회계
- 아, 그럼. 많이 좋아졌어.
한 일주일 열심히 노력하면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철수 - ....다행이네요.
철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에 든 가방 끈을 끊임없이
비틀고 꼼지락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철수
- 의사 선생님.
이것 좀 선희씨한테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거.....
회계 - 응? 뭔가?
철수 - 적지만... 선희씨 치료비입니다. 그럼 이만....
철수는 그의 손에 가방과 봉투 하나를 던지듯 맡겨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계 - 응? 집으로 안 들어가나?
철수 - 아직 밖에 볼일이 남아서요.
회계 - 어라? 지팡이 가져가야지!
철수 - 아.... 괜찮아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그렇게 그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느낀 회계가
가방과 철수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뒤에서 선희가 다가왔다.
선희 - 응? 아저씨, 안 들어오고 뭐하세요?
회계 - 선희야, 방금 전에 철수가....
선희
- 그거 철수씨 지팡이 아니에요?
철수씨 왔다 갔어요?
회계 - ...... 이거 주고 휭하니 갔어.
선희 - 뭔데요 이게?
선희는 서둘러 가방을 열어보았다.
철수가 남기고 간 가방 속엔
갈색에 동글동글한 모양을 가진
여성용 구두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선희 - .....!!!!
선희는 순간적으로 입을 가린 채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그 작은 물방울들은
붉게 흘러내리던 피만큼이나 선명하게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가서 박혔다.
선희는 있는 힘을 다해
철수의 뒤를 좇았다.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면서.
비슷한 시각. 철수.
철수
-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요.
어디를 가도.... 나에겐 어둠뿐인데...
따듯한 남쪽으로 가 볼까요?
그거 좋겠네요....
전 이제부터 남쪽으로 갈 거예요.
그녀가 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런데.... 남쪽이 어디죠?
철수가 서글픈 방백을 마친 뒤
무대 한 쪽을 향해 걸음을 돌렸을 때
뒤에서 엑스트라 한 명이 소리쳤다.
엑스 - 이봐요!! 그쪽은 위험해요!!
철수 - 남쪽으로 갈 거예요, 그녀가...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엑스 - 이봐요! 그 앞은 낭떠러지라고요!
철수 - 남쪽으로.
그렇게 철수는 운명을 달리했다.
선희 - 철수씨!! 철수씨 어딨어요!! 꺄악!!
다급히 휠체어를 밀고오던 선희는
길에 있던 작은 턱에 걸려
앞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선희 - 철수씨.... 철수씨~!!!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그녀는 앞으로 기어나갔다.
그녀의 힘겨운 몸부림은
맨 손으로 벽을 오르려는 버둥거림만큼이나
처절하고 애처로웠다.
선희 - 철수......쿨럭!! 켁......카학.....학.....
선희의 입에서 다시 한 번 붉은 선혈이 튀었다.
선희 - 철수씨....
그녀의 시선이 휘이..... 원을 그리듯
허공을 한 번 훑은 다음
이내 무너지듯 자리에 엎어졌다.
둘은.... 그렇게 운명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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