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속요(隸俗謠) 제3화
1653년 효종4년 나가사키로 가던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은 풍랑으로 동료 36명과 함께 제주도로 표류하게 됩니다. 당시 북벌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효종은 하멜 일행을 북벌정책의 일환으로 이용하려고 훈련도감에 편입시키지만 하멜의 동료 두명이 문제를 일으켜, 결국 1957년 강진의 전라병영으로 압송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북벌정책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 효종은 그들에 대해 여행금지 외에는 이러타할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효종사후 북벌정책은 폐지되고 이들의 지위도 점차 위태로워지고 결국 1663년 여수의 전라좌수영으로 보내진 이후로는 까닭 없는 박해와 잡역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1666년 하멜은 6명의 동료와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네덜란드로 돌아간 하멜은 비록 3년간의 모진세월도 있었지만, 조선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게 되고, 조선을 다시금 가보자 하는 마음에 자신이 속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조선과 통상을 하자고 제의를 합니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일본을 통해 동북아물품을 교역 하고 있었습니다. 이 무역에서 일본은 조선이나 청의 물건을 중계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동인도회사는 조선과 직접 통상한다면 이러한 불이익을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 하멜의 의견을 수렵하여 ‘코레아(스펠링은 잊었습니다.)’호라는 배를 발주, 하멜과 함께 조선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린 일본은 조선과 통상을 할 경우 자신들과의 교역은 전면 중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이러한 계획은 무산되고 맙니다.(이상은 [역사 스페셜]에서 본 내용입니다.)
예속요는 이러한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넣어 조선은 네덜란드와 동상을 하게 되고 서양의 문화가 부분적으로 유입되었다는 배경 하에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서양의 문물이 보이는 것에 대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밑에는 조선시대 도검자료 몇 점을 같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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