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도보순례

글/그림 : 희야시스

[3일째] 최초의 오헨로상 에몬 사부로

<시코쿠 88절 1200km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걷다. (10)>


-최초의 오헨로상 에몬 사부로-

2010. 3. 27. 토요일 / 춥지만 맑음 (3일째)

아가타상의 우려와는 달리 기특하게도 3시 50분에 12번 절 쇼산지
산문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v



12번 절 쇼산지[焼山寺]는 이름에 걸맞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코보대사가 수행을 위해 방문했지만 큰뱀이 불을 내어 온 산을 불
바다로 만들어 방해를 했다.

이정도로 물러설 코보대사가 아니다.

코보대사는 몸을 맑게하여 진언을 주창하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서서히 불이 꺼져갔다고 한다.

허공장 보살[虛空藏-菩薩](허공과 같이 무한히 크고 넓은 지혜와
자비로 중생의 여러 바람을 이루어 준다고 하는 보살)이 그 큰뱀을
잡아 동굴에 가뒀는데 그 동굴은 경내 앞, 안쪽 원으로 가는 도중에
그곳이 남아 있다.

본존은 허공장 관음보살이다.



쇼산지는 경내도 무지 크고, 귀여운 동자승들이며 종각 옆 그네까지
왠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그런 절이었다.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해냈다는 기분탓인지 마냥 기분이 좋기만 하다.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저 아래 무라이상이 도착해서 아가타상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내가 도착한지 20분이 흐른 뒤였지만 어째든 이곳까지 무사히 왔다는
점에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쇼산지에 도착했지만 오늘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숙소로 정한 스다치 전콘야도까지는 3km의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납경소에서 노쿄를 받는데 스님께서 오늘의 숙소를 정했는지 물어 보신다.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고 산속이다 보니 혹여라도 숙소를 정하지 못한 채
헤메고 있을 것 같아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혹여라도 마땅한 숙소를 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에 슈쿠보(절에서 제공하는
숙박형태)가 있으니 이곳 슈쿠보를 이용해도 좋을 듯 싶다.

쇼산지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대사당과 그 옆에 최초의 오헨로상이라고
할수 있는 에몬 사부로의 전설이 담긴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 에히메현에 탐욕스런 부호 에몬 사부로가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코보대사는 시코쿠를 돌며 허공장 구문 지법[虛空藏 求聞 持法]
(허공장 보살을 본존으로 하는 수행법으로 머리를 예리하게 하고
기억력을 좋게 한다.)이라는 수행을 하고 계셨는데 불가의 전통에 따라
탁발로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 코보대사는 에몬 사부로의 집에 가서 시주를 부탁하게
되었는데 탐욕스런 에몬 사부로는 시주를 하기는 커녕 빗자루로
코보대사를 쳐서 내쫓아 버렸다.

그 다음 날부터 에몬 사부로의 집에는 여덟 자식이 한명 두명...
죽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를 땅을 치고 후회하며
반성을 하게 된 에몬 사부로는 코보대사에게 사죄를 하고 자신의
악업을 씻기 위해 순례를 떠났으나 시코쿠를 20번이나 돌았는데도
코보대사를 만날 수 없었다.

이에 에몬 사부로는 '혹시 거꾸로 돌면 코보대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거꾸로 21번째 순례를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역방향으로 21번째 순례길을 나선 에몬 사부로는 12번 절
쇼산지에서 그만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병에 걸려 쓰러져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홀연히 나타난 코보대사는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며 길가의 작은 돌에 '에몬 사부로의 재래'
라고 써서 사부로의 왼손에 쥐어 주었고 에몬 사부로는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 다음 해, 영주 야스토시의 집에 남자아이가 태어나게 되는데,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을 펴지 않았다.

부친은 51번 절 안요지(安養寺)의 주지스님에게 아이의 기도를 부탁했고
주지스님이 기도를 하자 아이의 손이 펴지면서 그 손 안에서
'에몬 사부로의 재래[衛門三郎再来]'라고 쓰인 작은 돌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51번 절 안요지를 이시테지(石手寺)라고 고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바로 시코쿠 순례의 시작이기도 하며,
최초의 사카우치(역방향으로 순례하는 형식)에 관한 이야기다.

더불어 51번 절 이시테지 절에 관한 전설이기도 하다.



쇼산지에서 스다치 젠콘야도로 향하는 하산길도 그렇게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초입부분 차도에서 걷다 다시 산길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내려 갈수록
오른쪽 두번째 발톱이 신발에 부딪쳐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오르막 길은 힘들긴 하지만 발톱이 안아픈데 반해 하산길은
조금 덜 힘들기는 하지만 엄지발가락 보다 긴 둘째 발가락이
자꾸만 신발에 부딪쳐 점점 검은 색으로 변하며 고통스러웠다.



50여분 산길을 내려오니 드디어 평지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신나게 걷고 있는데 집 앞에서 뭔가를 태우고 있던 아주머니
한분이 갑자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오헨로상~ 여기 이거 갖고 가세요."라며 한웅큼의 사탕을
내 손에 쥐어 주신다.

"앗! 감사합니다!!!"

오늘은 사탕 오셋다이를 받았다. ^____^

사탕이나 초코렛등 단음식들은 오헨로상에게 필수 소지품목이다.
갑자기 체력이 떨어질때 사탕 하나를 오물거리고 나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받은 즉시 사탕 한개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입안을 통해 따뜻함이 가슴까지 뻗어 들어왔다.



저만큼 가고 있는 아가타상이 앞을 가리키며 이제 거의 다 온것
같으니까 조금만 힘을 내라고 한다.



진짜 저 앞에 조금씩 뭔가가 보인다.



오헨로 휴게소도 보이고~



그 옆에 스다치[すだち] 젠콘야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오늘 숙소에 도착한 것이다.

스다치란 유자나무의 한 품종으로 과실은 유자와 비슷하나
크기는 조금 작고 푸를 때 따서 향미료로 이용하는 과일이다.



와타나베상의 전화를 받고 기다렸다며 주인 아저씨는 우리를
숙소로 안내해 주었다.

이곳은 아가타상을 포함한 다른 오헨로상이 묵을 곳이다.
커다란 방이 두개가 있는데 한 방에 2~3명씩 함께 잔다고 한다.



여자인 관계로 나는 옆 건물에 주인 집인 듯한 곳의 이층방을
준비해 주셨다.

여자는 나밖에 없으므로 혼자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
거기다 방에는 깨끗한 이불이 하나 가득 있었다.

"이불이다 이불~!!!! 아싸~!!!"

너무나도 추웠던 어젯밤 생각에 이불만 봐도 감동의 눈물이
좔좔 흘러 내린다. ㅠㅠ

방을 안내해 주고 주인아저씨께서 서둘러 나오라고 한다.

그리고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에게 나와 아가타상, 와타나베상를
가미야마온센까지 데리고 갔다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마침 그도 가미야마온센에 가서 목욕을 하려던 참이었던 것 같다.



가미야마온센은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6시에 가미야마온센에 도착했는데 꽤 큰 온천이었다.

7시가 저녁식사 시간이라고 해서 6시 45분에 온천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주인아저씨가 주신 가미야마온센 티켓을 내고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찬바람을 맞으며 한 산행이라 그런지 허벅지가 쓸림 현상으로
붉게 발진이 나 있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어찌나 쓰라리던지... ㅠㅠ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후다닥 씻고 나갔더니 벌써 남자들은
목욕을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이웃집 아저씨의 차를 타고 스다치로 향했다.



7시에 가게로 가니 가게 중앙 테이블에는 이미 저녁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잠시 뒤 우리를 온천으로 데려다 준 분이 오셨었는데 주인 아저씨는
그분에게 오늘 고마웠다며 술 한병을 선물로 주셨다.



오늘 함께하는 오헨로상들은 나를 포함해 총 7명이었다.

그 중 40대 초반의 남자 한분은 알고보니 재일교포란다.
거기다 한국어를 정말 능숙하게 했다.

덕분에 오늘은 오헨로상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도 통역을 통해
맘껏 주고 받을 수 있었다. ^^

한국인이 두명이다보니 갑자기 다들 한국 노래를 불러 보란다.

부끄러워서 할줄 아는 것이 없다고 사양하는데 오헨로상 한분이
한국노래를 먼저 선창한다.

다름아닌 패티김의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였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수는 없을꺼야~

~때로는 보고파 지겠지 둥근달을 처다보면은
그 날밤 그 언약을 생각하면서 지난 날을 후회 할꺼야~~~!!!

손벽을 치며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 서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며... 힘겨웠던 오늘 하루를 다독여 주었다.



어제 아가타상과 함께 가미노유 젠콘야도에서 잔 무라이상은 오늘도
술을 많이 드시는 것 같다.

부은 눈이 나으려면 조금 드셔야 할텐데 괜찮냐고 하니 본인은
끄덕 없다고 한다.

또한 예전에 88개절과 20개의 번외 사찰를 모두 순례한 후 손수 책을
만들어 자신과 지인에게 나눠 갖은 책도 있다고 한다.

88개 절과 20개의 번외 사찰을 합하면 108개가 되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를 의미하며 이곳을 다 돈 사람은 번뇌를 끊고 해탈을 할 수있다고 한다.



백의에 노쿄를 받아 입고 다니는 아카이케상은 75세이다.

옛날에는 이 길을 걷는 사람 중 많은 분들이 이 길 위에서 죽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헨로상들은 전통적으로 소복을 상징하는 <하쿠이>라는
흰옷을 입고, 관 뚜껑을 대신할 대나무 삿갓 <스게가사>를 쓰고,
묘비로 쓸 금강지팡이 <즈에>를 짚고 이길을 걷는다.

이 길을 왜 걷고 있냐고 묻는 내 말에 아카이케상은
"난 말이지 이 길을 죽을 각오를 하고 걷고 있어,
내 백의에 찍힌 묵서와 도장 보이지?
이건 최고의 수의기도 해~
내가 죽게 된다면 코보대사가 내 영혼을 지켜 줄거야!!!"

시코쿠를 여행하는 동안 몸이 불편해 버스를 타고 순례를 하는 사람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백의에 묵서와 도장을 받아 자신의 수의를 미리
준비하는 모습들도 꽤 많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이 죽었을 때 그 옷을 입으면 코보대사가 자신의 영혼을
무사히 저 세상으로 안내해 줄거라 믿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곳 시코쿠 오헨로 미치(길)는 그래서
더 성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술과 음식을 어느 정도 먹었을 무렵 카레라이스가 나왔다.

스다치에서 키우는 강아지 한마리가 아가타 무릎을 딱 짚고
애처러운 시선을 보낸다. ^^a

"희상 그런데 내일 가는 13번절 다이니치지 주지스님이 한국인
여자라는 것 알아요?

"네. 알고 있어요.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능 할지는 모르겠네요.
워낙 바쁜 분이시니... ^^;"

갑자기 13번 절 주지스님인 묘선스님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
꽃이 활짝 폈다.

묘선스님 덕분에 이곳 주변은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좋은 것 같았다.

"희상은 내일 어디서 묵을 예정이야?"

"음... 16번절 간온지에서 17번절 이도지 가는 도중에 있는
사카에 택시 젠콘야도에 묵을까? 생각 중이예요."

"아~ 거기 괜찮은 곳이지~"
주인 아저씨와 와타나베상도 괜찮은 곳이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런데 잘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예요."

"그럼 A상(재일교포는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라
앞으로 그냥 이니셜로 부르겠습니다.)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
나이도 엇비슷하고 말도 통하니깐 좋겠는데 그렇게 해~"

"A상 내일 그곳에 함께 가는 것 어때요?"

"뭐...--;; 그렇게 하기로 해."

"아가타상은 어디에 묵을거예요?"

"난 17번절까지 간 뒤 그 주변에서 노숙을 할 생각이야.
몇일 동안 날씨 때문에 노숙을 못했으니깐 내일은 근처
공원에서 텐트치고 자려고."

"아...네..."

"내일은 아쉽지만 헤어지는 건가?
A상이 있으니깐 그래도 안심이 되네.
내일은 각자 따로 출발하자고."

"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시간이 9시 30분이다.
산행도 피곤했고 맥주까지 한잔 하다 보니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
앉기 시작했다.

무라이상은 방에서 한잔 더 할 분위기다.

일단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을 위해 자리를 정돈하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숙박료와 온천비를 냈다.

사실 아가타상과 나는 젠콘야도라고 해서 무료인줄 알았다. ^^;;

하긴 젠콘야도에서 식사까지 너무 잘 나와서 이렇게 하면서
무료로 해도 되는 건가 걱정했었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최소한의
금액만 받고 비영리로 운영하는 젠콘야도 였던 것이다.

아침, 저녁 포함해서 무척이나 저렴한 3,000엔이고
온천료는 생각보다 조금 비싼 1,000엔이다.
온천료는 왔다 갔다하는 교통비가 포함된 모양이다.

온천을 하지 않은 사람은 3,000엔만 내면 된다.
그리고 맥주는 한캔당 300엔~
각자 마신 만큼만 내면 된다.

그래도 스다치 젠콘야도 덕분에 착한 가격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숙박비를 계산하고 아침은 6시 30분이라는 말을 듣고 다들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들어와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오늘 산행때문에 내일 근육통으로 고생할까봐
예방차원으로 근육이완제 한 알을 먹고 다리에 파스를 바른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날씨는 언제쯤이면 따뜻해질까?
산행하느라 몰랐는데 오늘도 꽤 춥다.

두꺼운 이불을 이렇게나 많이 깔고 덮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기가 느껴지니... ㅠㅠ

한국의 온돌방이 정말 그립다.
오늘도 눈물이 괜시리 흐른다.

'괜찮아... 잘 해낼 수 있을거야....'
나에게 말없이 속삭이며 잠이 들었다.

희야가~

휘리릭~~~~


<지출 내역>

납경료 300엔 X 2 = 600엔 / 스다치젠콘야도 숙박비 3,000엔
온천료 1,000엔 / 맥주 2캔 600엔

당일총액 : 5,200엔


일일 도보거리 : 17km
가모노유젠콘야도 ~ 11번절 후지이데라 ~ 12번절 쇼산지 ~ 스다치젠콘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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