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도보순례

글/그림 : 희야시스

[3일째] 악명 높은 길, 헨로 고로가시를 넘다.

<시코쿠 88절 1200km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걷다. (9)>


-악명 높은 길, 헨로 고로가시를 넘다. -


2010. 3. 27. 토요일 / 춥지만 맑음 (3일째)

가모노유 젠콘야도에서 30분정도 걷다보니 저 멀리 11번절 후지이데라가
눈에 들어왔다.



후지이데라(藤井寺)는 절의 이름대로 경내에 있는 등나무로 유명한
절로서 4~5월에 걸쳐 보라색의 등나무 꽃이 경내를 가득 채운다고 한다.

이 절은 시코쿠 88개의 절에서는 3개 밖에 없는 선[禪]사(교리외에 참선으로
자신의 본성을 구명하여 부처의 깨달음을 터득하는 종파의 하나)로 다른 둘은
15번절과 33번절이 있다.



경내를 둘러보고 있는데 스님 한분이 나에게 다가왔다.

"오늘 어디까지 가십니까?"

"12번 쇼산지까지 가려고요."

"가방이 무거워보이는데 괜찮겠어요?
이곳부터 그곳까지가 헨로 고로가시(순례자를 굴러 떨어지게 하는 험한 길)
라는 것은 알고 있나요?"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힘든 곳인가요?"

"몇년 전인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100kg정도 나가는 육중한 몸매의 남자가 이곳을 돌기 위해 왔었죠.
보기에 너무나 불안 불안 했던 남자였습니다.
그렇게 그냥 올라가게 했다가는 중도에 돌아가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에게 이 길을 다 돌고 싶다면 11번 절에서 12번 절로 가는 것보다
12번 절을 빼고 우회해서 13번 절로 가라고 했죠.
그리고 시코쿠를 다 돌고 나서 그때 12번 절을 다시 도전해 보라고..."

"그래서 그는 어떻게 했나요???"

"ㅎㅎ 그 후로 몇달 뒤 그 사람으로 부터 엽서 한 장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88번 절까지 결원을 했고 그후 12번 절도 다녀 왔노라고...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와~~!!!! 정말요!!!! 정말 감동적이네요.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

"암튼 조심해서 무사히 결원하시길 빌께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 문제였다.
사실 15kg 나가는 가방도 문제지만... 이놈의 뱃살이며....
골고루 퍼진 살들이 남친 말로는 내 몸 상태는 지금 다른 사람들보다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를 하나 더 업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했다. --;;

줄여야 할 것들은 비단 내 가방의 물건뿐만 아니라 내 온몸에 붙어 있는
살이 더 문제가 아닐까 싶다. --;;;

어쨋든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이 길을 걸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헨로고로가시에서 굴러 떨어지게 해서
더 이상 나갈 수 없다고 하니...
이참에 코보대사에게 내가 이 길을 걸을 자격이 있는지를 물어 볼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11번 절 경내를 가로 질러 사찰 뒷편으로 가니 12번 절로 향하는
초입이 눈에 들어왔다.

일찍부터 서둘러 그 길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 오헨로의 모습들이
하나 둘 보였다.

일단 올라가기 전 오늘 묵을 숙소를 정하고 가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산행하고 나면 12번 절 쇼산지에서는 분명 체력이 바닥날텐데 근처에
숙소가 2.5km 떨어진 민슈쿠 나베이와소가 가장 적합해 보였다.

인기가 많은 곳이므로 예약이 필수라고 해서 이곳에서 예약을 하고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사..!!!
아가타상이 예약전화를 했는데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라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

이럴줄 알았으면 어제 예약을 해 놓을 것을... ㅠㅠ

아가타상이 일단 출발하고 하시야마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다른 숙소를 찾아 보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초입부터 오르막의 연속이다.

사실 산행을 할때 내리막보다는 오르막을 좋아한다.
그러나 좋아한다고 해서 빨리 갈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르막을 걸을 때면 나는 남들보다 배로 느린 걸음이 된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은 비오듯 흘러 내리고....
가방 무게 때문에 준비한 물이 500ml 물병 하나 뿐인데 자꾸만
물병에 손이 간다.

물을 원래 잘 안마시는 편인데 이 길에서는 물이 너무나 간절하다.
이런 식으로 마셨다가는 이 산을 다 넘을때까지 버티지 못할텐데
정말 큰일이다.

아가타상과 같이 동행을 하기로 했지만 각자의 페이스로 걷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가 힘들기 때문이다.

30분정도 걷다보니 11번절 후지이데라에서 1.5km 떨어진 하시야마
휴게소에서 아가타상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보니 벌써 9시다.

늦은 아침으로 어제 슈퍼에서 구입한 도시락을 꺼내 놓았다.
역시 먹는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도 없다.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지는 요시노가와시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아가타상은 아침을 먹고 나서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서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매일 매일 전화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곤 했는데 나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하더니
나를 바꿔주신다. ^^;;

저 멀리 수화기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상냥하기만 하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직접 대면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가타상만큼이나 좋은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오늘 묵을 숙소에 대해 다시 상의를 했다.
내 책에는 안나와 있는 곳인데 그가 갖고 있는 책에는
사쿠라라는 료칸이 있었다.

"나베이와소 보다 더 먼곳인데 희상 걸을 수 있겠어?"

"네. 괜찮아요."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아가타상이 료칸 사쿠라에 전화를 해 보니....
이곳은 혼자 묵으면 요금이 추가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헨로상들의 일반적인 료칸이 아니라 전통료칸이라서
그런가 보다.

한참을 궁리하더니... 아가타상도 이곳을 함께 묵겠다고 한다.
그러면 추가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니깐 나를 위한 배려였다.
그런데 둘이 묵어도 금액이 만만치 않다. --;;;

한사람당 요금이 7,500엔이라고 한다. ㅜㅜ

이러다 이 여행을 다 끝마칠때쯤이면 거지가 될지도 모를일이다.

아가타상이 나땜에 일부러 그곳에 함께 묵겠다고 한 것이 고마워
비싸지만 흔쾌히 그곳에 예약을 하겠다고 했다.

뭐... 내가 언제 이렇게 비싼 료칸에 묵어 보겠는가...!
이것도 다 경험 아니겠는가.. ^^;;;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행을 시작하면 이내 금방 아가타상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그럴때면 묵묵히 그 길을 홀로 걷는다.

한참을 걷다보면... 저 멀리 아가타상이 휴식을 취하며 나를 기다리신다.

혼수상태인 것마냥 뿌연 내 시선도.... 저 멀리 아가타상이 기다리면
다시 또렷한 시선으로 돌아온다.

내가 도착하면 나의 몸상태를 체크하며 괜찮은지 물어 본 뒤....
또 다시 길을 나서신다.
절대 무리하지말고 천천히 오라며...



사실 산행을 할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식수이다.
충분한 식수를 준비해서 걷지 않으면 탈수 현상으로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방 무게때문에 식수를 한병밖에 준비를 못했었는데
다행히도 이곳에 약수물이 있었다.

바가지로 물을 한참 마신 뒤... 빈 병에 다시 물을 채워 길을 나선다.



10시 20분 드디어 죠도안 암자에 도착했다.

11번 절에서 3.2km정도 밖에 오지 못했는데 시간이 참 빨리 흘렀다.
이 페이스로는 5시까지 쇼산지에 못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아가타상이 한가지 제안을 한다.

"희상... 노쿄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5시까지 인것 알지?"

"네"

"혹시 그 시간까지 희상이 도착 하지 못할 것 같으면....
내가 먼저 그곳에 도착해서 희상의 납경장에 노쿄를 받고 기다릴께."

"네... 감사합니다."

정말 아가타상은 여러가지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에
감동의 눈물이 좔좔... ㅠㅠ

이곳에는 간이 화장실도 있었다.

산행에서 화장실을 만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남자들이야 뭐... 아무 곳에서나 자유롭게 볼일을 볼 수 있지만
여자들은 정말 화장실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시간이 촉박하기때문에 볼일만 보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죠도안에서 십여분 더 걸으니 오헨로상을 위한 휴게소가 보인다.

마치 이곳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좋으니 앉아서 쉬어 가라고
손짓 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가방을 내려 놓고 이곳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뭐든지 무리하면 탈이 생기는 법...
빨리 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휴식도 중요한 듯 싶었다.



아가타상도 보이지 않고... 홀로 산을 오를때면 고통이 엄습해 온다.
그럴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나뭇가지에 대롱 대롱
매달린 응원 메세지들이다.

헨로 미치(길)
동행이인
간바로~(힘내~)

자꾸만 쳐지는 발걸음에 다시 온기를 담아 길을 나선다.
가슴이 뜨거워 진다.



류스이안까지는 1.2km 남았다고 한다.

후지이데라부터 여기까지 온 거리가 보통사람들이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시계를 보니 나는 딱 3시간만에 왔다. ^^;;;

중간에 밥을 먹은 시간을 빼더라도 평균 미달이다. ^^;;;



그래도 류스이안까지 1.2km는 20분만에 도착했다.
(이정표는 25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고~ ㅋㅋ

류스이안에도 생수가 있어서 다시 물을 마시고 빈병도 또 채웠다.



류스이안에는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아가타상은 이곳에서도 반야심경을 외며 참배를 했다.

또 바로 아래에는 화장실이 있어서 근심을 덜수 있었다.
(해우소이니까~)



풍경도 좋고 기다란 의자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아가타상과 나는 이곳에서 사진만 살짝 찍고 조금 더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류스이안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가니 젠콘야도가 보였다.

산행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오헨로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이곳은 이불도 있다!!!!
방도 꽤 넓어서 7명은 충분히 잘수 있을 것 같다.

방안에는 전자렌지도 있고...
밖에는 간단히 씻을 수 있게 물도 있다.

노숙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방안에 노트가 있어 펼쳐보니...
어제 가모노유 젠콘야도에서 봤던 동일 인물이 이곳에도 흔적을
남긴 것이 보였다.

겨울이니까 더 걷지 않고 이곳에서 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오늘 일정이 여기까지가 아니므로....
이곳에서는 점심만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점심으로 어제 먹다 남긴 모찌와 슈퍼에서 구입한 빵과 딸기를 먹었다.

"아가타상 이곳은 여자 혼자 묵기에는 좀 위험하겠죠?
산 중간이라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생겨 소리를 질러도 도와주러 달려 올
사람도 없는 곳이니깐... 게다가 산 짐승들이라도 오면 완전 무서울 것 같아요."

"응... 아무래도.. 그렇지?"

이곳은 일행이 있으면 모를까...
혼자서는 밤에 조금 무서울 것 같은 곳이니 여자들은 필히...
이곳에서 혼자 지낼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류스이안 아래 젠콘야도에서 점심을 먹고 1시간 힘겨운 산행을 하고
나니 저 멀리 700미터 산 정상의 죠렌안 입구가 보였다.

얼굴은 붉게 물들고 없는 힘을 쥐어 짜며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향나무와 그 앞에 코보대사가 나를 맞아 주었다.

높직이 자란 향나무 때문인지 볕이 하나도 들지 않아 얼마나 추운지
돌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4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꽁꽁 얼어 있었다.



다들 힘겨웠는지 이곳에서 하나 둘 가방을 내려 놓고 휴식을 취하며
오늘 숙소를 정했는지 서로의 정보를 주고 받았다.

아가타상이 다른 오헨로상과 한참을 이야기 하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희상... 희소식이야!!!
저분이 나베이와소에서 조금 더 가면 스다치 젠콘야도가 있데.
우리 그곳에 묵을까?"

"나야 당연히 좋죠!!!!"

"그래? 그럼 사쿠라 료칸에 취소가 가능한지 전화해 볼께."

아가타상은 바로 사쿠라야상에게 전화를 해서...
거리가 멀어서 도저히 그곳까지 오늘 못 갈것 같다며
취소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도 특별히 패널티 요금 없이 취소를 해 주었다.

아가타상은 전화를 끊은 뒤 혓바닥을 귀엽게 쏙 내밀며...
잘 되었다고 나에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에게 숙소 정보를 알려주신 와타나베상은 스다치 젠콘야도
사장에게 연락해 두명이 더 가게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며 길을 나섰다.



우리도 곧 뒤따라 길을 나섰다.
정상이라 다음에 펼쳐진 길은 내리막과 완만한 길이 기다리고 있어
잠시 발걸음이 가볍웠다.

거기다 저렴한 곳으로 숙소까지 해결되고 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한참을 가다가 저 멀리 아가타상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서 있는 곳을 가니 허걱!!!!!!!!!!!
이건 멧돼지 가죽이 아닌가!!!!

그럼 이곳에 멧돼지가 살고 있다는 것일까????
태어나 처음으로 본 멧돼지가 이 모습이라니....

비록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가죽이지만...
녀석들의 살기에 나도 모르게 주눅들었다.



죠렌안에서 내리막이라 좋았었는데 또다시 올라 가야 할 산이
버티고 있었다.

거기다 이제부터 기다리는 오르막길은 급격한 오르막길이었다.



천천히 걷다보니 저 아래에서 나보다 더 느린 걸음으로 오고 있는
무라이상을 만났다.
그도 오늘 우리와 같은 숙소에서 묵기로 했단다.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이는데 무사히 잘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천천히 조심히 오시라고 인사말을 남기고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아래에서 갑자기 개들이 무섭게 짖으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혹시... 멧돼지라도 나타난 것이 아닌까???
갑자기 소름이 돋으며 등골이 서늘해 진다.

사람이 극한 공포에 휩싸이면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것일까?
갑자기 미친듯이 산을 뛰어 올라갔다.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산을 오르내리고 나니
드디어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다행히도 맷돼지도.... 녀석을 쫒고 있던 개들의 모습도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

휴~~~~~~~~~~!!!
그제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었다.

그 길가에는 여러 불상들이 죽~~~~~ 도열해 있었다.



마지막 샘물도 보이고 차량을 이용한 오헨로상들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이제 12번 절 쇼산지도 다 온듯 하다.

첫번째 관문인 헨로고로가시를 무사히 넘어 왔다는 것이 한없이
기쁜 순간이다.

희야가~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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